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||[youtube(WbBl5bJ4lt4)]|| ||[youtube(ybgS1rfenWo)]|| 서역인 무인상 높이 257cm 등. 사자상 높이 131.5~140cm 등. [[대한민국의 사적|대한민국 사적]] 제26호 경주 [[원성왕릉]]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8세기~9세기경 [[신라]]의 석조물 10점이다. 거대한 봉분 앞에 석인상(石人像), 석사자상, 석주(石柱)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, 수량은 문인상·무인상 4점, 사자상 4점, 석주 2점으로 이루어져 있다. [[파일: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4.jpg]] [[http://www.hgnews.co.kr/default/index_view_page.php?part_idx=310&idx=33291|사진 출처 : 황성신문]] [[파일: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5.jpg]]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421&aid=0002030849|사진 출처 : 뉴스1 - “실크로드 통해 신라와 페르시아 직접 교류했다”]], [[http://www.kbsm.net/default/index_view_page.php?idx=241577&part_idx=332|경북일보 - [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] ˝신라 처용설화는 페르시아 `쿠쉬나메`의 아브틴 왕자 이야기˝]]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신라를 방문한 [[서역]]인을 모델로 제작된 무인상으로 [[페르시아]]와 [[서라벌]]을 잇는 동서문화의 교류적 측면에서 크게 중시되고 있는 자료이다. 통일신라시대 절정기의 사실적인 조각인 [[성덕왕릉]] 석인상을 계승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된 상으로 당시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. 이 무인상들은 큰 눈이 움푹 들어가게 표현하고, 그 아래로 큰 코와 두꺼운 입술, 덥수룩한 [[턱수염]]을 나타내었다. 머리에는 [[터번]]과 비슷한 창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다. 한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들고 있으며, 다른 한 손은 옆구리에 붙여 긴 칼을 들고 있어 약간 기우뚱하게 서있다. 두 팔에는 [[근육]]이 표현되어 있어 육중한 무게감을 준다. [[파일: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6.png]]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20&aid=0001951699|사진 출처 : 동아일보 - [‘황금의 제국’ 페르시아]<3>페르시아인들 경주를 활보하다]] 지금으로부터 1,200년~1,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[[한국]]의 석조상 10점으로, 8~9세기 당시 한국의 국제 교류 활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문화재이다. 이에 2005년 1월 22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